생명의 본질이나 기원에 관한 질문은 과거에는 신학적 문제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제는 윤리적, 과학적 문제 나아가 정치적 문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우리가 생명체인 이상은 그 질문에 대해 완전한 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를 통해 생명이 걸어온 길을 살펴본다면, 힌트 정도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에, 36부작 대하 과학 서사시 "진화의 ABC"를 연재하려고 한다. 두둥~ (사실은 뭐라도 쓰지 않으면 이 블로그가 졸지에 황우석 블로그가 되버릴 것 같아서지만.. --;)

생명의 기원이 진화냐 지적설계(푸훗)냐 하는 건 둘째치고라도 진화는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일단 '진화'의 뜻을 분명히 밝혀두고 가자. 한자로 '進化'라고 쓸 때는 '개선'이나 '진보'라는 어감이 있지만 영어 'evolution'은 그것보다 '변화(change)'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그 '무엇'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요즘엔 대체로 '유전자의 빈도'로 본다. 간단히 말해 진화란 "여러 세대에 걸쳐 유전자의 빈도가 변하는 현상"인 것이다.

이렇게 정의하면 진화는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이라는 게 분명해진다. 1908년 생물학자 하디와 와인버그는 유전자의 빈도가 변하지 않을 수 있는 조건 다섯 가지를 발표했다. 이를 하디-와인버그 정리라고 부른다. 그 조건이란.

1. 한 유전적 집단에 속하는 개체 수가 무한히 많아야한다.

2. 짝짓기가 무작위적(random)으로 이뤄져야 한다.

3. 자연선택이 없어야 한다.

4. 돌연변이가 없어야 한다.

5. 유전자 흐름(gene flow)이 없어야 한다.

라는 것인데, 거의 불가능한 조건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돌연변이나 유전자 흐름을 통해 새로운 유전자가 생겨나고 이 유전자들이 짝짓기나 자연선택을 통해 더 많이 퍼지면 집단 내의 유전자 빈도가 변하게 된다.

이 과정이 심하게 일어나면 과거에 같은 종이었던 개체끼리 짝짓기를 해도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생식적 격리'가 일어난다. 이제 이들은 서로 다른 종이 되는 것이다.

다음부터는 하디-와인버그 정리의 조건이 깨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좀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Posted by eupho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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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ritiker 2005.12.11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컴 툴바에 귤님 블로그가 올라와 있어서(어쩐 일일까요?) 자주 클릭하게 되네요. 36부작. 흐흣.

  2. 이지 2005.12.11 1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우석 얘기 계속해줘~ 해줘~

    아휴, 디씨 과갤이랑 브릭에서 계속 글 읽었더니 눈아파. 그래도 속은 시원해졌어!

  3. 초절정하수 2005.12.11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6부작이라.. 기대됩니다. ㅎㅎㅎㅎ
    과연... 어떤 글을 보여주실지???
    (사실은 저도 진화에 대해서 글을 한개 쓰려다가.. 귤님의 이 글 보고 포기합니다. ㅎㅎㅎ)
    수고하세요~

  4. Dotty 2005.12.11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대 됩니다. 변함없이 명쾌한 논리로 시원하게 풀어주시길.. (푸훗)이 인상적이네요 --;

  5. 골룸 2005.12.11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네요, 과학 선생님 ^^

  6. intherye 2005.12.11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겠습니다.

  7. 2005.12.11 2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ritikier // ㅎㅎ 툴바에까지! 영광입니다. ^^
    이지 // 뭘 더 해. 버럭~!
    초절정하수 // 이 연재는 미리 써두고 자동으로 매일 업데이트 됩니다. 기대하십쇼 ^^
    Dotty // 시원도 하고 화끈도 하게 써보죠 ^^
    골룸 // 재밌으시다니 다행이군요. ^^
    interye // "많은 성원 바랍니다."라고 얘기드려야 할 듯 ^^

  8. Asparagus 2005.12.12 0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벌써 글 36개를 썼단 말인가...ㅠ.ㅠ;;; 암튼 재밌겠다 ㅋ 기대!

  9. soyio 2005.12.12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6부작이라니. 3.6부작이라면 믿겠소.
    -*고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사람.

  10. 2005.12.12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Asparagus // 36개를 다 쓰진 않았지.. 그래도 "대하"가 붙으니까.. ㅎㅎ
    soyio // 어차피 로그를 씌우면 가수는 똑같아 ㅋㅋ